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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 문득 - 국제&사회&정치&경제

[세계의 분쟁 제 1부: <이스라엘 vs 팔레스타인 분쟁>편]100년간 이어지는 증오의 역사

by Yum맨 2022. 3.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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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와 신문 등을 보면 허구한 날 다툼이 벌어지는 곳이 있다. 그런 기사를 접하면 도대체 저들은 왜 싸우는지 궁금해져서 한번 세계에 일어나고 있는 다양한 분쟁들을 몇 부에 걸쳐서 간단하게 정리해 보려고 한다.

●이번에 포스팅 하는 분쟁은 이제는 왜 싸우는지 그 시작조차 까마득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분쟁>에 대한 편이다.

●세계에 분쟁이 일어나는 곳에는 이유가 각양각색 이겠지만 분류하자면 크게 <종교>, <이념>, <국경>, <민족>에 따른 <불평등/차별> 이 대부분의 이유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분쟁은 <종교>, <국경>, <민족> 의 요소가 복잡하게 엮여 있다.

※ 여기서 말하는 팔레스타인은 나라 이름이지만 동시에 지역 명으로, 현재의 이스라엘 영토와 팔레스타인의 구역(요르단강 서안 지구 및 가자 지구) 일대를 가리킨다.

●먼저 분쟁이 일어나고 있는 지리적 위치를 보자

아래 지도를 보면 알 수 있지만 팔레스타인 지역에 있는 이스라엘은 중동 국가들에게 둘러싸여 있다. 북쪽으로는 레바논 시리아, 동쪽으로는 요르단, 왼쪽으로는 이집트 모두 이스라엘에 적대적인 중동 아랍 국가들이다.

그리고 이스라엘 영토에 뉴스에 자주 나오는 핵심 분쟁 지역<가자지구(Gaza)><서안지구(West Bank)>도 있다. 마지막으로 서안지구에 송곳처럼 파고든 뾰족한 지역이 그 유명한 <예루살렘>이다.

●도대체 이들은 왜 싸우고 있는 것일까?

이를 알기 위해서는 그 역사를 잠깐 짚어야만 한다. 이스라엘은 유대인 민족이 세운 국가다. 그리고 유대인은 유대교를 믿는 민족으로 그 역사는 무려 기원전 3000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우 : 다윗의 별

역사를 길게 쓸 것은 아니라 간단하게 말하면 그들은 그들의 신 "야훼"에게 받은 <가나안 땅 (현 팔레스타인 지역)>에 이런저런 일을 겪고 정착하며 살다가 기원전 6세기 정도에 바빌론 유수도 겪고, 로마인에게 점령당하다가 결국 전 세계에 뿔뿔이 흩어지게 되었다. 이렇게 중동 및 유럽 등 세계 전역에 유대인의 <디아스포라 : 기존에 살던 땅을 떠나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여 생긴 집단>가 생겨났다.

그러나 전 세계에 뿔뿔이 흩어져서 살던 유대인들의 대우는 그렇게 좋지만은 않았다고 한다. 유대인들은 자신 소유의 땅에서 경작을 하지 못하였고, 주로 금융 및 기술업에 종사하였다. 그리고 대금업 관련의 결과랄까 기존 정착민들에게 미움을 주로 받았고 십자군 전쟁 때 재산을 몰수당하는 등 수많은 핍박을 받은 역사를 가지고 있다.

당시 유대인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셰익 스피어의 <베니스의 상인>에서 잘 드러난다 (샤일록이 유대인이다.)

19세기 민족주의 열풍이 불면서 이런 유대인들에게도 변화가 생겨나기 시작했는데, 테오도르 헤르츨이 제창한 <시오니즘>으로 팔레스타인 지방에 유대인의 민족 국가를 건설하는 민족주의 운동이 시작되었다.

시오니즘의 제창자 : 테오로드 헤르츨

여기까지 요약하면, 2000여 년간의 디아스포라로 유대인들의 나라의 필요성을 느낀 유대인들이 선조들의 땅 팔레스타인으로 돌아가고 싶은 욕구가 나타났고 <시오니즘>이라는 유대민족 국가 건설 운동으로 발현되었다는 것이다.

▶1차 세계대전 영국의 이중계약

유대인들이 팔레스타인 지역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은 잘 알겠는데 이거랑 아랍인들이랑 분쟁이 일어나는 거랑 무슨 관련인 걸까?

보통 세계사에서 근 현대사에서 분쟁이 일어나고 있는 지역의 근원을 쫓아가다 보면 <영국> 혹은 <프랑스>가 저질러 놓은 일들의 결과로 이어져 내려온 케이스가 많이 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분쟁 역시 마찬가지이다.

어떤 일을 벌여 놓았는가 하면, 일단 영국이 이중 계약을 저질렀다. 1차 세계대전 당시 이스라엘의 영토는 <오스만 제국>의 영토였다. 1차 세계 대전에 후발주자로 끼어든 오스만 제국은 서방 세계와 대립을 했었고 영국은 오스만 제국과 전투를 치러야만 했다.

이때, 영국은 오스만의 제국과의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 두 단체와 계약을 맺었다.

▷1. 아랍[맥마흔 선언] : (아랍의 도움이 필요하다!)

1차 세계대전중 이집트 주재 영국 고등 판무 맥마흔이 아랍인의 독립 국가를 건설하는 것을 지지하기로 약속한 선언 : 오스만 제국 아래에 있는 아랍 세력과 계약을 맺어 오스만 제국과 전투를 치러 준다면 통일 아랍 영토 보장해 주겠다는 내용인데 여기서 말하는 아랍영토는 레바논, 시리아 서부를 제외한 오스만 제국의 영토다.

영국의 독립 서약을 믿고 당시 아랍을 지배하던 오스만 제국과 전투를 벌인 아랍군

▷2. 이스라엘[밸푸어 선언] (유대인의 금전적 지원이 필요함)

1917년 영국의 외무 장관 아서 밸푸어가 팔레스타인 지방에 유대인의 국가 수립을 약속한 외교 선언으로, 선언을 대략 요약하면 : 유대인들이 영국의 전쟁 수행을 지원하면 "팔레스타인에 유대인들의 모국을 세우는 데 호의를 베풀 것이며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

문제는 두 가지 계약의 영토가 겹쳐 있었다는 점에 있다.

그러나 영국은 아랍인들과의 약속을 지킬 마음이 없었다. 영국은 1916년 프랑스와 러시아 제국과 함께 오스만 제국이 멸망하면 어떻게 땅을 나눠먹을지에 대해 사이크스 피코 협정을 비밀리에 맺어 놓았던 것이다. 영국이 이리 모순된 정책을 취한 이유는 그 시절 영국의 외교 전략이었다고 한다. 그때그때의 상황을 유리하게 한 다음, 후에 아랍 지역 전체를 지배한다는 계획이었다.

▶2차 세계 대전이 끝난 후 영국의 철수 후 UN의 관리

1차 세계 대전 후 영국이 팔레스타인 지역을 통치하고 있었고 많은 유대인들이 이 시기에 이주&정착을 해 오기 시작하였다. 영국의 허락 하에 세계 각지에 살던 유대인들은 팔레스타인에 이주하면서 땅을 하나 둘 구매하였고 영국에게 통수 맞은 기존 아랍인들과 많은 충돌이 있었지만 영국이 치안을 관리하며 지냈다. (로스차일드 가문이 땅 구매 및 정착 지원을 하였다고 한다.)

시간이 지나 2차 세계 대전이 일어났고 유대인 홀로코스트가 발발, 이를 피하기 위해 대규모 유대인들이 이스라엘로 이주했다고 한다. 이렇게 유대인들이 대거 팔레스타인으로 몰리자 기존 아랍인들 간의 갈등은 격렬해지고 있었다고 한다.

영국도 손 놓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는데, 유대인의 이주 규모를 제한하는 정책을 펼치며 양쪽을 분리 독립시키는 방안이나 협력국가 수립 안 등을 여러 가지로 모색해보았지만 모두 수포로 돌아갔고 제2차 세계 대전 이후의 재건 문제만으로도 복잡했던 영국은 결국 팔레스타인 문제를 UN에게 관리를 맡기고 1948년 통치를 포기하고 철수하게 된다.

그리고 UN은 <UN 결의안 181호>를 통해 유대인과 아랍인의 영토를 분할 관리 제안을 했다. 당시 인구 비율에서 아랍인의 3분의 1, 전체 면적의 7%만을 소유하고 있던 유대인들에게 팔레스타인 전역의 56%를 분할한다는 내용이 이 분할 안의 골자다. 예루살렘은 UN이 특별 관리한다.

분할당한 땅은 유대인에게 유리하여 매우 당연하게도 아랍인들은 반대했고, 유대인은 받아들였다고 한다. 1948년 5월 14일 유대인들은 유대인들의 나라 <이스라엘> 건국을 선포를 하게 된다.

그리고 다음날 이에 대비하고 있던 아랍 연맹은 1948년 5월 15일 이스라엘에 전쟁을 선포하게 되는데 이를 제1차 중동 전쟁이라고 한다. 그 결과로 UN 결의안 181호 : 팔레스타인 분할 안은 실행되지 않았다.

▶ 4회에 걸친 중동 전쟁 : 이스라엘의 승리!

출처 :https://namu.wiki/w/%EC%A4%91%EB%8F%99%EC%A0%84%EC%9F%81

사실 1차 중동전쟁 때 당연히 중동 연합이 손쉽게 이스라엘을 이길 수 있을 줄 알았지만 미국의 원조 및 결사 항전을 벌인 이스라엘 국민들 마지막으로 아랍 국가들의 안일함 등 다양한 이유가 있지만 결국 이스라엘이 이겼고, 연이여 4차까지 이어진 중동전쟁을 치른 이스라엘은 군사 강국으로 자리 잡으며 영토를 지금의 국경으로 굳힐 수 있게 되었다.

출처 :https://bemil.chosun.com/nbrd/bbs/view.html?b_bbs_id=10040&amp;pn=1&amp;num=75151&amp;order=reco

이후에도 1차 인티파다(1987~1993) 2차 인티파다(2000~2005) 등 격렬한 해방운동(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의 무력 분쟁)을 몇십 년간 이어오고 있다.

※인티파다란 1987년부터 시작된 이스라엘에 대한 저항운동으로 압제를 받는 팔레스타인인의 민중봉기이다.

▶팔레스타인 건국 및 오슬로 평화 협정

평화를 시도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1993~4년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을 중재자로 하여, 라빈 이스라엘 총리는 야세르 아라파트 팔레스타인 해방기구(PLO) 의장과 <오슬로 평화 협정>을 맺었고, 이는 팔레스타인 임시 자치정부 출범의 계기가 됐다. 가자지구와 서안지구에 팔레스타인 독립국 건설 허용과 이스라엘에 대한 무장투쟁 포기를 골자로 한다.

그리고 이 협정을 한 이츠하크 라빈 이스라엘 총리는 이스라엘 강경파에 의해 암살당한 후, 오슬로 협정은 전혀 이행되지 못하고 있다. 즉 이스라엘은 <평화와 공존>을 외치는 자는 죽게 되는 나라가 된 것이다.

그 뒤 팔레스타인 땅에서 평화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지 않다가, 2020년 당시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중동 평화안을 내놓았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이를 <세기의 딜>이라 부르며 환영했지만 팔레스타인은 한쪽에 치우쳤다며 거부했다. 중동 평화안은 그 뒤로 실행되지 못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다른 아랍 국가들 간의 평화 협정을 맺고 그들과의 국교를 수립 중이다.

1979년 이스라엘 이집트
1994년 이스라엘 요르단
2020년 이스라엘 바레인
2020년 이스라엘 UAE
2020년 이스라엘 수단
2020년 이스라엘 모로코

▶그리고 현재

이제, 이스라엘 주변의 모든 나라들은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분쟁에 별로 관심이 없다. 그저 조용해지길 바를 뿐이며 이에 팔레스타인 하마스 정권이 이스라엘에게 테러를 일으키는 것이다.

이스라엘은 서안지구 팔레스타인 국경 넘어 정착촌을 만들고 분리 장벽을 만들고 이스라엘 정규군이 치안을 담당하고 있는데 이는 명확히 제네바 협약 위반이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국제적인 비난에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 더군다나 미국은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둘이서 알아서 해라 라는 입장이다. 이러니 이스라엘은 좀 더 야금야금 서안지구를 파고들어 가고 있는 것이다.

출처 :출처 :좌 :https://www.bbc.com/korean/international-50469862 우 https://www.nanum.com/site/peace_act/113950
출처 :https://m.hani.co.kr/arti/international/arabafrica/928167.html#cb

●분쟁의 핵심 쟁점에는 무엇이 있을까?

총 세 가지로 분류해서 말할 수 있는데

▶1. 동예루살렘의 지위

팔레스타인의 국가의 수도인가 아니면 이스라엘 통치의 연장으로 갈 것인가?

▶2. 국경 확정

1967년 6일 전쟁 이전 국경을 기초로 영토 교환 협의 문제 논의. 요르단강 서안 정착촌 철수 문제와 연계하여 대규모 정착촌 외에 나머지 중소 규모 정착촌 모두 철수 협상을 어떻게 할 것인가 - 얼마를 철수시키고 남겨둘 것인가?

▶3. 팔레스타인 난민 문제

1948년 이후 몇백만 명의 난민들이 레바논 요르단 시리아 등에서 흩어져 살고 있는데,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난민 보상을 해 줄 것인가 원래 팔레스타인 국가로 복귀를 허락할 것인가? 의 쟁점이 있다. 이스라엘 입장에서는 난민들을 전혀 들어오지 못하게 하고 싶은데 만약 팔레스타인 들어오지 못한다면 봉기가 일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런 쟁점들이 해결하지 못하면 이스라엘- 팔레스타인의 분쟁은 결코 멈출 수가 없고 현재의 갈등이 미래에도 고착될 수밖에 없다.

▷게다가 이스라엘의 국민 여론이 매우 극우화 되어 있는데, 이스라엘의 경제상황이 나쁘지 않아서 아무도 팔레스타인 평화협상에 관심이 없다.

▷팔레스타인 역시 내부 정치가 부패 만연하고 지도력 있는 정치인이 부재한 상황이다.

▷이럴 때 중요한 것이 중재자 역할을 할 수 있는 미국인데, 적극적 중동평화 정착 노력이 없는 것이 문제이다.

●사건 자체로만 놓고 본다면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에 침투하여 그 세를 확장하는 모양새가 <침탈자>라고 말을 해도 될 것이며, 최근까지 이어져온 행동을 비추어본다면 도덕적으로 비난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힘의 논리"를 따르는 국제 사회에서 <도덕>을 논하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이다. 세계적인 비난이 쏟아지더라도 힘이 있으면 그런 것들은 아무런 제제가 될 수가 없다. 국제사회가 할 수 있는 것은 UN의 중재와 언론의 비난 정도밖에 없다.

한국이 여기서 보고 생각할 점이라는 것은 우리 역시 다른 국가들과 긴밀한 협조 및 핵심적인 이득을 공유하지 않으면 국제 사회는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냉정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당연한 이야기이다. 우리나라 역시 그러고 있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숱한 다른 대륙에서 벌어지는 내전에 한국은 어떤 포지션을 취하고 있는가?

100년간 끝나지 않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분쟁은 아마 둘 중 하나가 사라지지 않는다면 끝나지 않을 것만 같다. 더욱 분명한 것은 증오는 또 다른 증오를 낳는 말처럼 시간이 지날수록 연쇄를 끊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분단의 현실을 가지고 있는 우리나라 또한 똑같이 적용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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