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 문장은 책 "죽음의 수용소에서"에서 발췌하였다. "죽음의 수용소에서"의 저자 "빅터 프랭클"은 2차 세계 대전 시절 독일의 유대인 수용소에서 갖은 고초를 겪은 정신과 의사였다. 종전까지 살아남은 그가 수용소의 경험을 가지고 만든 학술서가 "죽음의 수용서에서"이다.
●어쨌든 요즘 나는 위 문장이 뇌리에 자꾸만 맴돈다. 최근 내가 불편한 감정을 많이 느끼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이 든다. 예로 들어 좁은 길에서 내 앞에 느리게 가는 행인이나 식당에서 마주치는 수많은 사람들 이라던지 내 일상에 있던 모든 것들에서 안 좋은 감정이 떠오르는 것이 마치 내가 뭐든지 불편하게 느껴지는 <프로 불편러>가 되는 듯 했다. 요즘 내 상태가 좋지 않아서 일까? 도대체 왜 이럴까?
생각해보면 내가 느낀 불편함들의 현상들은 지극히 일상적이며 자연적으로 일어나는 일이다. 나를 자극하는 환경이 문제가 아니라 내 몸의 컨디션 혹은 내 마음의 상태와 반응이 문제인 것이다.
자극과 반응은 비단 생물학에서 배우는 것뿐만 아니라 정신적 작용도 포함하는 것이다.
나를 불쾌하게 만드는 외부 자극이 없으면 좋겠지만 세상은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것이 당연하다. 버스 시간이 어떤 이유로 늦을수도 있고 내가 하려던 것만큼 성과가 안 나올 수 있다. 심지어 친구나 연인 혹은 회사 사람들 등 인간관계까지 포함해서 우리에게 오는 외부 자극이 어떻게 들어오는가는 통제할 수 없는 것이다.
통제할 수 없는 외부 자극에 이어 우리의 반응 역시 우리가 쌓아온 행동 및 마음의 습관에 달려 있다. 우리 몸은 에너지를 아끼기 위해 <습관>이라는 이름의 반응을 한다. 간식이 눈 앞에 보이면 나도 모르게 간식을 입에 넣는다던지, 담배 피우는 사람이 특별한 의식 없이 담배를 피운다던지 하는 등이다.
그러나 이 모든 습관적 반응들은 내가 의식적인 노력 없이는 습관 그대로 가져가게 될 것이다. 불쾌함 역시 마찬가지다. 내가 느끼는 불쾌감에 반복적으로 집중하고 연쇄 반응으로 이어진다면, 예로 들어 투덜거림을 표현하는 등 불쾌감에 또 반응을 해버리면 나는 앞으로 <프로 불편러>가 될 가능성이 생겨버린다.
이 습관적 연쇄에 제동을 거는 것이 맨 위의 구절 <자극과 반응 사이의 선택할 자유>라는 틈을 만드는 것이다. 방법은 보통 <알아차림>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는데 현재 내 반응을 관찰하는 것이다. 내가 왜 이럴까? 하는 생각이 아니라 내가 이러고 있네 하는 것만으로도 선택할 수 있는 자유를 얻을 길을 갈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이게 말처럼 쉽지는 않다. 오죽하면 <세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 / 사람은 고쳐 쓰는 것이 아니다.>와 같은 말이 있겠는가?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불가능에 가까울 정도록 어렵다는 말이다. 100번 해서 1번 고쳐지면 다음에는 80번 해서 1번 고쳐지고 그렇게 수 많은 시간과 의식적인 노력이 가해져야 겨우 고쳐지는 것이라고 생각이 든다.
그렇기에 가장 좋은 습관은
안좋은 습관을 들이지 않는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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