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소개 : 테드 창: Ted Chiang : 姜峯楠(Jiāng Fēngnán, 장펑 난) :1967 생 (2021년 기준 만 54세)
대만계 미국인 과학소설 작가로, 현재 전 세계의 문학계에서 최고의 SF소설가로 평가받고 있는 인물(2020년 기록)이다. 그는 29년 동안 겨우 중편이나 단편 소설 17개를 썼고, 아래 표에 기재한 것처럼 작가가 쓴 작품마다 각종 유명 SF상은 다 휩쓸고 다니는 중이다.
(사진 출처 : http://www.yes24.com/24/AuthorFile/Author/129108 )
●독서 동기 : 독서 모임에서 공통으로 읽는 책으로 선정되어서 읽게 되었다.
●<당신 인생의 이야기>에는 7개의 단편 소설이 묶여 있는데 그중에 내가 좋아하는 것은 "이해, 일흔 두 글자, 네 인생의 이야기"이다. 그리고 바빌론의 탑도 보면서 생각할 게 많았기 때문에 아래에 잠깐 내가 느낀 것에 대해 적어보고자 한다.
물론 나머지 "지옥은 신의 부재, 인류 과학의 진화, 영으로 나누면, 외모 지상주의에 관한 소고"도 그 스토리가 충분히 재미있었지만 뭐랄까 나에게 큰 의미로 다가오지 않았다.
▶바빌론의 탑 : SF와 판타지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이 책의 첫 번째 소설 "바빌론의 탑"에서 나는 조금 불편한 부분이 있었다. 소설에서는 그저 진흙으로 단단한 진흙 벽돌을 만들고 이를 정교하게 맞추어 쌓고 그 벽돌 사이에 시멘트 역할을 하는 역청(콜타르)을 발라 탑을 높여간다. 탑이 하늘을 향해 높아져 갈수록 건축물이 받는 부하는 기하급수적으로 올라갈 텐데 화강암과 진흙 벽돌로만 탑의 부하를 버티는 것이 도무지 머리로 받아들여지지 않아서 차라리 탑의 구조에 부하를 견디는 <마법> 같은 처리를 하면 내 머리가 받아들여질 수 있을 텐데 라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나중에 생각해보니 원통형 구조의 세계에서는 하늘에 가까워지면 하늘의 지점에도 끌어당기는 힘이 생겨서 탑이 건축 부하를 버티며 유지되는 것인가?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이 생각도 사실 여러 반론이 이 나오며 억지인걸 알지만 차라리 이런 가정을 하면 그나마 내 머리가 편하게 받아들여지는 것 같다.
작가는 왜 설명하기 어려운 부분을 <마법>으로 처리하지 않았을까? 작가의 글에는 이런 비 과학적인 내용은 별로 나오지 않는다. 작가는 판타지스러운 것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걸까?
여기서 드는 생각은 판타지와 SF의 차이는 무엇일까? 그냥 단어로만 생각해보면 SF는 과학 픽션, 판타지는 환상적인 소설인가 싶은 생각이 든다. 나로서는 마법이나 신 이런 뭔가 이해하기 힘든 개념들이 난무하는 이야기가 나오면 판타지고 SF는 그래도 과학적인 기반으로 지금 과학은 아니지만 그래도 과학 비슷한 것을 전제로 하는 내용이 나오면 SF인가 싶다.
이 질문에 대해 2009년 부천 국제 판타스틱 영화제에 초청되어 내한한 테드 창이 'SF와 판타지의 차이'를 주제로 진행한 강연 내용이 있어 한번 가져와 보았다.
즉, 뭔가 논리적으로 설명해서 이해할 수 있는 것이면 SF이고, 논리적인 것이 생략돼서 결과만 도출하는 식의 이야기면 판타지라는 것이다. 판타지를 좋아하는 나로서는 이 해석이 참으로 잘 맞는다고 느껴진다. 그리고 옛날에 나온 신화나 지금의 판타지 소설이나 그 맥락과 문맥은 거의 비슷한 것이다.
▶네 인생의 이야기 (Story of Your Life) : 미래는 정해진 것일까?
내가 이 책에서 가장 좋아하는 단편이다. 왜냐면 "인간의 인지능력은 인간이 사용하는 언어의 틀 안에서만 이루어진다면, 지금보다 높은 레벨의 언어를 인간이 가지게 된다면 인간의 인지 레벨도 높아질 수가 있을까?"라는 이야기의 전제가 매우 흥미로웠기 때문이다. 물론 스토리 라인과 인물들의 심리 묘사 역시 흠잡을 곳이 없었다.
대략 내용은 언어학자인 주인공이 지구에 온 외계 문명 '헵타 포드'의 언어를 배워나가는 과정을 그려내고 있는데 전제에서 말했던, <지금 인간이 가진 언어보다 격이 높은 언어>를 가져오기 위해 작가는 아예 외계인(헵타 포드)을 소환해 버렸다.
<네 인생의 이야기>를 보다가 내용이 익숙하고 어디선가 이미 본 거 같은 생각이 자꾸 들어 찾아보니, 2017년 2월에 한국에서 개봉한 영화 <Arrival>의 원작이었다. 당시 이 영화를 굉장히 재미있게 봤던 기억이 나서 책을 볼 때 더 몰입이 잘 되었다.
외계인 헵타 포드는 과거-현재-미래를 동시에 인지하고 있는 존재로 언어학자인 주인공이 이 언어를 배우면서 그녀도 햅타포드처럼 과거-현재-미래를 동시에 인지할 수 있는 능력을 개화하게 되었다.
즉 인간의 존재는 미래를 볼 수 있는 능력을 잠재적으로 가지고 있었지만, 언어적 한계 안에서만 사고할 수 있었기 때문에 할 수 없었던 것을 외계인의 언어를 얻음으로써 개발이 된 것이다. 중간중간에 나오는 주인공의 딸의 이야기가 시간 순서가 뒤죽박죽이어서 뭔가 처음엔 헷갈렸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미래의 이야기를 적었던 것이었다. 그녀는 마지막에 그녀의 딸이 사고로 죽는 걸 알았지만 그럼에도 게일과 결혼한다는 똑같은 선택을 한다.
여기서 문득 떠오른 것은 영화 <테넷>에서 닐이 말한 "일어날 일은 일어난다 : What's happened's happened "라는 대사였다.
"만약 내가 미래를 볼 수 있고 미래에 부자가 되어 있는 나를 봤다고 했을 때 나는 부자가 되는 미래를 포착한 순간부터 게으르게 살아도 난 미래에 부자가 될 수 있는 것일까?" 그리스 신화적 운명론처럼 접근하면, "그렇다"이다. 그리스 신화에서는 사람이 자신의 운명을 피하기 위해 별짓을 다해도 결국 운명을 피할 수 없는 것처럼 나오기 때문이다.
그러나 <테넷>과 <네 인생의 이야기>에서는 그리스 신화의 운명론과 비슷하게 "미래는 이미 결정되어 있다"는 결정론적 사고를 가진 듯 하지만 다른 점도 있다. 그것은 바로 우리가 비록 미래의 결과를 알더라도 우리는 주체적인 의지(자유의지)를 갖고 최선을 다해 살아가야 한다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최선을 다해서 적극적으로 살아가는 삶이 결국 우리의 미래를 만들어 간다는 뜻이다.
여기서 나는 운명과 미래에 대해서 생각을 하게 되었다. 서양에서는 하나님이 인간의 운명을 정했다고 하고, 동양에서는 <사주팔자>라는 이름으로 태어난 시간과 날짜에 따라 이미 운명이 정해져 있다고 한다.
그러나 내 생각엔 운명과 미래는 늘 가변 한다고 생각이 든다. 그럼에도 그 가변성 속에 큰 줄기는 있을 것 같은데 예로 들어 담배를 하루에 두 갑씩 피우는 헤비 스모커는 어제도 담배를 피웠을 것이고 오늘도 피웠다면 내일도 피울 것이다. 99 퍼의 확률로 그는 내일도 담배를 피울 것이지만 사실 아주 낮은 확률로 안 피울 확률도 있다.
큰 줄기를 가진다는 것은 결국 일어날 확률이 높다는 뜻이다. 확률이 높다는 것은 과거의 내 습관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내 행동과 마음의 습관이 내 현재를 만들었고, 미래 역시 만드는 것이다. 물론 습관을 바꾼다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것이다. 그러나 다시 강조하지만 언제든 변할 가능성 또한 내포되어 있다.
현재의 나의 행동과 마음가짐이 습관이라는 형태로 내 미래를 정한다.
▶일흔 두 글자 : 인간의 갈등은 인간이 있는 한 어디서든 존재한다.
마치 영화를 한 편 보는 것과 같은 내용들이 몰입감을 주었다. 인류의 종말과 그 종말을 막기 위한 단체와 주인공, 그리고 자신의 이익과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한 세력들의 갈등이 참 현실적이고 공감이 잘 되었다. 그리고 "명명학"이라는 것이 참 재밌었는데, 초반부에 진흙 덩어리에 "이름"을 넣어서 움직이게 끔 하는 장면이 나올 때 나는 이번 단편은 마치 베르나르 베르베르에서 나왔던 초보 신들에 대한 이야기 인가? 싶었다.
그러나 사람의 이야기고 사람들이 이름으로 물건을 조작하는 "명명학"이라는 것이 보편화되어 있는 세계관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곧 인간이 멸종할 것을 알게 된 사람들이 이 "명명학"의 기술을 통해 우리가 종을 이어가도록 하는 내용인데 이 마법과도 같은 환상의 자연 이론보다는 각자 자신이 바라는 것을 위해 움직이다 생기는 인간의 갈등이 너무 현실적이어서 마음에 들었다.
<일흔 두 글자>를 보다가 문득 든 생각으로 생명의 정보가 들어있는 정자와 생명을 잉태시키는 난자가 만나서 새로운 생명이 만들어지는 것이라는 구절이 있는데 그러면 다른 동물들에게서 예로 들어 새의 정자와 개의 난자에 무언가 API 같은 인터페이스 호환 장치가 있으면 서로의 특성이 결합해서 새로운 개체가 나타나게 될 수도 있는 것인가?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러나 글의 마무리가 좀 급하게 된 거 같아 아쉬웠다.
▶이해 : 인간의 진화는 어디까지 이루어질 수 있는가?
<이해>의 주인공은 불의의 사고로 뇌사상태에 빠졌다가 신약을 맞고 의식을 차리고, 지능이 아득히 높아지는 이른바 '초지능'을 갖게 되어 일어나는 일들을 그린 소설이다.
이 글을 보면서 떠오른 것은 스칼렛 요한슨이 나온 영화 <루시>이다. 루시의 주인공처럼 <이해>의 주인공은 개발 중인 신약을 통해 지능이 올라간 것뿐만 아니라 인간의 격을 벗어나는 존재가 될 수 있었다. 주인공은 인간들과 교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해 홀로 살지만, 그와 대척점에 있는 동일한 '초지능'을 가진 존재를 느끼며 대립하다가 싸우고 죽고 만다. 이 글을 보면 미래에는 인간이 어떤 식으로 진화가 될 수도 있는지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이 책이 옛날에 쓰여서 그런지 요즘에는 이런 주제가 많이 다뤄지고 있어 영화 <루시>, <리미트리스>, <공각기동대> 등등 인간이 지능이 높아지는 이야기들이 많아 그 참신함은 떨어지지만 인물과 상황 묘사는 재밌어 몰입이 잘 되었다.
●욤맨 별점 : ★★★★ : 별 4개! : 읽어보면 감탄이 나오는 책. 독자로 하여금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표지에 적힌 대로 <살면서 단 한 권의 책을 읽을 수 있다고 하면 읽어야 할 책>이라고 말할 정도는 아니지만, 굉장히 뛰어난 책이고 많은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는 이유를 단번에 알 수 있었던 책이다.
그러나 책이 재밌는 것은 사실이지만 과학적 전제가 한 번쯤 생각을 많이 해 봐야 할 주제들이고, 한 번씩 관련 자료들을 찾아보면서 읽기 때문에 책의 진행 속도가 생각보다 빠르지는 않았다.
첫 번째 작품 <바빌론의 탑>은 1990년에 만들었고, 이 책이 집필된 것은 2002년으로 거의 20년이 다 되어가는데, 그 내용은 지금 봐도 참신하고 재밌다. 스토리와 인물 묘사 그리고 독자에게 생각할 거리를 남길 수 있는 작가의 능력에 감탄이 나오지 않을 수가 없음을 느낀다.
혹시 SF와 판타지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반드시 읽어보면 재밌을 책이고, 아니더라도 한 번쯤 생각할 거리를 풍부히 제공할 수 있는 책이기 때문에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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